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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연예인을 기용한 스타트업 마케팅이 부쩍 늘었습니다. 모델의 이미지를 디지털 마케팅 캠페인에 단편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옥외 광고와 TV 광고까지 활용해 대규모 브랜딩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스타트업의 셀럽 마케팅 사례와 이에 대한 짧은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마켓컬리의 '전지현' 효과 

2016년, 마켓컬리가 아직 작은 스타트업이던 시절. 어느 강연에서 대표님과 초기 멤버 5명을 만나 짧게 인사를 나눈 적 있었습니다. 식품 배송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에 마음속으로 "그게 과연 잘 될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몇 년간, 마켓컬리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했고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주요 일간지 1면에 마켓컬리 대표님의 기사가 실리고, '넥스트 유니콘'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켓컬리의 높아진 위상을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게 느낀 순간은 바로 전지현이 나오는 마켓컬리 TV 광고를 봤을 때였습니다. TV 광고 이전에도 단편적인 마케팅 배너를 보긴 했던 것 같지만, 그 모든 캠페인 효과를 합친 것보다 TV 광고의 효과가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엄마도 저에게 마켓컬리라는 회사를 아냐고 물어보실 정도였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마켓컬리의 셀럽 마케팅은 한국 스타트업계에 하나의 전례가 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이 대한민국 정상급 여배우 전지현을 기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회사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했습니다. 신비주의를 유지해온 전지현이 지닌 특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마켓컬리의 브랜드 이미지를 한 차원 높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환상적인 느낌의 보라색 세트와 소품, '샛별 배송'과 '새벽 배송'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한 문구도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마켓컬리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8년 12월 약 70% 정도였던 브랜드 인지도가 2019년 12월에는 약 90%로 상승했다고 합니다. TV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 2019년 5월에는 같은 해 1월 대비 매출이 14% 올랐습니다.  

 

컨셉, 모델, 미장센, 문구 등 여러 요소의 조화로 아름다운 광고가 탄생하기는 했지만, 이 캠페인에 긍정적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갈수록 적자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연예인을 기용해 전국적 캠페인을 진행한 것에 대한 염려와 비판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광고를 본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드는 바람에 대다수 상품이 품절되고 물류 인프라가 이를 감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마켓컬리의 기존 사용자들이 새벽 배송을 지원하는 다른 경쟁사들(쿠팡, 쓱배송)로 이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화려했던 전지현 마케팅은 마켓컬리에 득과 실을 동시에 안겨준 셈입니다.

 

스타트업 셀럽 마케팅 사례

물론 마켓컬리가 스타트업 최초로 셀럽 마케팅을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우아한 형제들과 직방 등의 스타트업이 아마 연예인을 기용한 마케팅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최근 몇 년간 셀럽 마케팅을 벌인 스타트업과 그 모델들을 대략 나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순서는 랜덤이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 마켓컬리: 전지현
  • 쏘카: 강하늘 -> 서현진
  • 마이리얼트립: 정유미
  • 야놀자: 조정석 -> 하니 -> 육성재
  • 여기어때: 신동엽, 시즈널 모델로 음문석, 김수미, 배정남 등
  • 다방: 혜리
  • 직방: 송승헌, 이희준 -> 서강준+설현 -> 구하라+이동욱 -> 김진경 + 정혁
  •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 류승룡
  • 알바천국: 김세정 -> 김병철+전소미 -> 머쉬베놈
  • 알바몬: 혜리+임창정 -> 쌈디 -> 박미경 
  • 밀리의 서재: 이병헌+변요한
  • 토스: 원빈
  • 무신사: 유아인
  • 크로키닷컴(지그재그): 한예슬
  • 브랜디: 청하
  • 원티드: 최우식
  • 와디즈: 강하늘
  • 로톡: 박성웅
  • 백패커(아이디어스): 정려원 -> 전효성
  • 트렌비: 정려원+이제훈
  • 버킷플레이스(오늘의 집): 윤아 
  • 뤼이드(산타토익): 여진구 -> 마미손, 원슈타인

위 스타트업들이 벌인 캠페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마케팅 성과를 비교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각 캠페인의 목적과 성격, 기간, 예산, 채널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사 브랜딩 캠페인에 장기적으로 셀럽의 이미지를 활용한 경우도 있고, 새로 출시한 서비스나 기간 한정 이벤트 등에 짧게만 활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정 셀럽이 출연한 드라마나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를 빌려와 배우의 이미지가 아닌 캐릭터의 이미지를 마케팅에 활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캠페인이 다른 캠페인보다 뛰어나게 훌륭했다거나 별로였다고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마케터'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셀럽 마케팅이 정말로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기여했는지를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셀럽 마케팅을 잘 활용하면 셀럽이 지닌 고유의 이미지를 빌려와 브랜드에 긍정적 이미지를 더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또는 친숙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그때그때 인기있는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직방처럼 광고 모델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모범적인 사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델이 된 연예인들이 별로 직방의 이미지와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다방 앱을 광고한 혜리와는 달리 직방 모델들은 '열혈 사회초년생'같은 느낌도 없어서 주 사용자 층에 와 닿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와 연예인 이미지가 잘 맞는 사례는 박성웅을 기용한 로톡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웅이라는 배우의 비주얼과 분위기, 그리고 그동안 맡아왔던 캐릭터의 이미지 때문에 정말로 법률 상담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강하늘을 기용한 와디즈 TV 캠페인도 좋았습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펀딩으로 있게 하자'라는 문구와 강하늘의 '바른 청년' 이미지가 스타트업의 패기와 열정, 참신함, 풋풋함 등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마케팅이었습니다. 

 

모델이 정말 좋고 왜 기용했는지도 알겠는데 캠페인 컨셉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례도 있습니다. 요새 한창 진행 중인 오늘의 집 캠페인입니다. 윤아가 지닌 맑고 반듯한 이미지와 오늘의 집이 지향하는 바는 제법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광고 컨셉이나 문구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광고 문구의 '따라다라따~'는 과거 인기 방송 프로그램 '러브하우스'의 배경음악을 따온 것 같은데, 요즘 젊은 세대가 과연 직관적으로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영상 광고는 그래도 멜로디가 있어 괜찮았지만, 지하철 한 칸을 이 문구로 도배한 걸 봤을 때엔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왜 연예인 모델을 기용했는지 잘 모르겠는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뤼이드는 토익 앱을 광고하면서 왜 여진구, 마미손, 원슈타인을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어 타겟 사용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는 데이터를 어디선가 얻은 걸까요? 저는 세 연예인을 모두 좋아하긴 합니다만, 토익 앱과의 연관성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른 연예인을 쓰려다가 여러 상황이 맞지 않아 차선책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 셀럽 마케팅, 양날의 검일까? 

이렇게 유행처럼 자리 잡은 셀럽 마케팅을 이해하려면 스타트업에서 연예인을 기용하는 이유와 그 기저에 깔린 욕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초기 스타트업' 단계를 넘어선 회사가 되었음을 증명하려는 심리야말로 무리해서라도 셀럽 마케팅을 진행하는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핵심 프로덕트나 서비스를 만들고, 사용자들을 끌어모으다 보면 어느 시점에 넘어야 할 벽이 생깁니다. 검색이나 소문을 통해 자발적으로 유입되는 사용자까지 모으고 나면, 이제는 우리 브랜드를 전혀 모르는 일반 대중에까지 잠재 고객 풀을 넓혀야 합니다. 이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인지도와 몸값이 높은' 연예인을 기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케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브랜딩 캠페인은 워낙 돈과 노력이 많이 들고 영향 범위가 넓은 만큼,* 신중하게 잘 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로 브랜드 이미지와 잘 맞는, 나아가 이를 업그레이드해줄 모델을 찾는 것은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광고 컨셉을 제대로 잡고, 참신한 문구를 포함해 매력적인 소재를 제작하고, 가장 적절한 채널로 이를 광고하는 모든 과정을 유기적으로 해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현금을 아끼고 리소스를 비축하며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편이 낫습니다. (물론 마케팅 팀에서 반대하는데도 대표가 셀럽 마케팅을 강행하는 사례도 간혹 있습니다.) 

 

저도 셀럽 마케팅 모델 기용 과정에 아주 조금이나마 참여해본 적이 있고, 위에 언급한 캠페인 중 제 지인들이 진행한 캠페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으며,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짜도 여러 이유로 엎어지고 변경되기 마련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선순위로 고려했던 연예인들이 퇴짜를 놓기도 하고, 예산이나 일정, 컨셉이 맞지 않아 모델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델을 선정해놓고도 회사 내부에서 광고의 방향성이나 컨셉, 시각물에 대한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광고를 무사히 완성해 마케팅을 진행하다가도 모델인 연예인의 신변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중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브랜딩 팀과 마케팅 팀의 리소스는 한없이 늘어만 갑니다. 

 

따라서 이 모든 변수와 위험성을 안고도 셀럽 마케팅을 진행하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명분이 존재해야 합니다. 명분까지는 너무 거창하다면, 적어도 진행 방식과 타이밍에 대한 사내 구성원들 간 합의는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 개의 브랜딩 캠페인에 대한 기회비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셀럽 마케팅을 위한 셀럽 마케팅이 되거나 자기만족 식의 캠페인으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예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마케팅일수록 더욱 탄탄한 기획력과 마케팅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TV 광고 활성화 지원 사업을 통해 제작비의 최대 50%, 최대 5천만 원까지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2019년 기준 250개 기업이 360억 원 상당의 지원을 받았고, 지원금을 활용해 좋은 광고 결과를 거둔 사례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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